김중업 박물관
얼마 전, <이타미 준의 바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관련 검색을 하다가, '김중업'이라는 건축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박물관이 바로 집 근처 안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언젠가 가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곧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에 쉬는 날을 이용해 들러보기로 하였다.
ㅇ 김중업박물관 / 안양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ayac.or.kr/museum/main/main.asp
과거 그가 1959년 유유제약 안양공장으로 지었던 건물이, 2006년 유유제약이 제천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회사와 결별하였다. 그리고 안양시가 이 부지를 매입해 2014년 현재의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쉬는날에도제약공장
그 옆에는, 안양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1층은 카페, 2층에는 전시장과 3층에는 '더 테라스' 레스토랑이 있다. 모서리에 서양의 인물 조각상과 같은 것이 서 있는게 특징이다.
바로 옆에 옛 유적지의 터를 볼 수 있는 것도 이곳 방문의 장점이다.
두 건물 사이에는, <사라져 가는 문자들의 정원>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유유제약 공장 건물을 철거하고 남은 기둥을 살려, '사라짐'이라는 것을 테마로 수메르 설형문자, 중국 문자, 이집트 문자, 인도 문자, 한글(과거 형태를 말하는 듯), 고대 그림문자, 그리스 문자 등 현재 쓰이지 않아 거의 사라져 가는 문자들을 새겨넣었다고 한다.
김중업박물관을 보면서 몇 가지 충격을 받았다. 우선, 그는 현대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사사를 받은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라는 것이다.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 참석하여 그를 만나게 된다. 지금이야 K-팝이나 한류 드라마로 한국이 인지도가 높은 나라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전쟁을 막 끝낸 가난한 나라 출신의 건축가를, 잠깐의 만남으로 아틀리에에 채용한 것을 보면 그의 비범함이 돋보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곳에서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여러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다. 그중 <위니테 다비타시옹>도 있는데, 마르세이유에 지은 첫 번째 것은 아니고, 낭트-르제의 것이라 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강이 나빠진 관계로 아틀리에 규모를 줄이게 되며 귀국하게 된다.
그는 국내에서도 여러 작품을 남긴다. 부산대학교 본관(현 인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현 언어교육원), 유유산업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 주한 프랑스 대사관, 삼일빌딩, 태양의집, 올림픽공원 평화의문, 제주대학교 구 본관(철거됨), 부산 UN묘지 등이 그것이다. 제주대학교 구 본관의 경우 지금 보아도 현대적인 건축물로 느껴지는데, 바닷가에 지은 관계로 건물이 부식되고, 활주로를 짓는 관계로 철거되었다고 한다. 실물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웠지만, 박물관에서의 자료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또 프랑스에서 만든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상영하는데 화질이 약간 좋지는 않지만 나름 볼만하다. 프랑스대사관은 일반인의 출입이 안되기에 불가능하지만,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감상 가능하다. 그 외 남아있는 건축물들은 한번 시간 내어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전시물들 중 건축가가 생전에 썼던 노트가 있는데 여러 공부를 했던 흔적이 있고, 어떤 일기장은 여고생의 글씨체가 연상되는 어떤 소녀 감성의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재미있다)
박물관을 나오면 옆에 달 모양의 변화가 벽에 새겨진 재미있는 건물이 있다. 문이 살짝 열려있고 틈새가 빼꼼히 보였는데,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안양박물관 3층 '더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딱 요즘같은 가을날씨에 이용해주어야 하는 루프탑이다. 일요일 오전 사람들이 아직 외출하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거의 이곳을 전세내다시피 하고 먹는 점심은 너무나 여유롭고 좋았다. 좋은 전망에 따사로운 날씨, 그리고 가을바람. 솔플만세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긴 하다.
박물관 옆에는 안양예술공원 주차장이 있고, 여기에 <1평 타워>라는 조형물이 있다. 이름이 좀 어려운, '디디에르 피우자 파우스티노'라는 포르투갈 출신 건축가의 작품이다. 한국 건축 넓이 계량단위였던 1평에 대해, 그것이 가지는 가능성을 시험해보고자 위로 높이 쌓아올려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올라가보고싶게 생겨서, 꼭대기까지 가보았다.
내려오는 길이 살짝 무섭긴 했다. 그리고 조명 스위치가 층마다 설치되어 있긴 했는데, 작동하지 않았다. 유리는 뿌옇게 된 상태였고 죽은 곤충들이 조명에 엉겨있고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아, 자주 관리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뭔가 좀 아쉽다.
안양박물관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김중업 전시'에 대한 도록을 구입할 수 있었다. 날짜를 보니, 2018년에 제작한 나름 신상이다. 마지막 안양에 대한 추억이 담긴 기념품이라 생각해, 도록을 자주 구입하는 편은 아님에도 이번엔 구매하였다. (르 코르뷔지에란 단어가 한몫했다;;;)
이것으로 짧은 휴일의 외출을 마쳤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어딘가를 다녀오면 더 찾아보고, 들러보고자 하는 곳만 더 늘어나는 것 같다.